2009년 6월 4일 목요일

검색으로 듣는 일렉 기타리스트(해외) (2009.03.27 ~ 04.27)

썸네일1위는 에릭 클랩튼이다.
여기, 약관 스무 살에 무려 '기타의 신'이라 일컬어진 인물이 있다. [사조영웅전]에 곽정,[의천도룡기]에 장무기가 있듯이 로큰롤에는 에릭 클랩튼이 있다. 생일 날 조부모에게 받은 기타 선물을 가지고 허구한 날 유명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의 주법을 모사해보던 소년은 로컬 밴드에서 연주 경력을 쌓다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로큰롤 밴드 '야드버즈'에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야드버즈'와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즈'와 '크림'의 이름으로 기도하건대, 본격 블루스록과 하드록 시대의 흥망성쇠가 그로부터 시작됐다. 매번 음악적인 견해차라는 이유로 그룹을 뛰쳐나와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자기 정체성을 규명해보고자 하는 천재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솔로 선언 이후 그의 음악은 흡사 다른 차원으로부터 온 듯 믿을 수 없이 매끄러운 슬로우 핸드 주법과 기름기 빠진 블루스 감성으로 한층 성숙미를 더했다. 에릭 클랩튼이 아닌 에릭 클립톤이라 불려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그는 그렇게 기타의 신이 되었다. 아, 심장 떨려.

썸네일2위는 지미 헨드릭스다.
에릭 클랩튼이 에릭 클립톤이라면 지미 헨드릭스는 클립토나이트를 손에 쥔 렉스 루터다. 그는 지구의 악기로 우주의 선율을 재현해내는 야심가이자 전위 예술가고 선동가면서 꽉 짜인 테크니션이었다. 기타를 머리나 등 뒤로 돌려 연주하거나 이빨로 물어뜯고, 흡사 악기와 성관계를 맺는 듯 헐떡거리던 유명한 쇼맨십들은 숱한 팬들에게 탈골과 오라메디의 나날을 선사했다. 66년 9월 노엘 레딩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결성, 데뷔앨범 [Are you experienced?] 발매 후 그의 화려한 연주력과 예술성은 로큰롤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추적돼왔으며, 69년 8월 우드스탁의 그 날, 전설이 되었다.

썸네일3위는 잉베이 맘스틴이다.
젊음의 휘발성을 속주의 쾌감으로 어물쩍 이겨보고자 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마음을 다해 경배해마지 않았던 전설의 천재. 속주의 대가, 속주의 마왕, 속주의 마에스트로, 속주의..돼지(어느 순간 살이 너무 쪄버렸다) 잉베이 맘스틴. 그의 출연 이후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조금 더 빠르게! 를 외치며 정작 소울을 잃어버렸다는 뒷말을 듣기도 하고, 나 빼면 전부 하수, 식의 뉘앙스 덕에 시선 또한 곱지 않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잉위' 맘스틴이냐 '잉베이' 맘스틴이냐 '잉웨이' 맘스틴이냐를 가지고 밤을 새어가며 죽음의 토론을 펼치기도 하였으니. 그의 연주는 정말이지, 오르가즘 그 자체였다.

썸네일4위는 드디어 지미 페이지 되시겠다.
에릭 클랩튼이 뛰쳐나옴과 거의 동시에 야드버즈에 들어간 지미 페이지는 야드버즈 해체 이후 로버트 플랜트, 존 본햄, 존 폴 존스와 함께 뉴 아드버즈를 조직하는 데, 이게 전설이라는 수사조차 새삼스러워 밉살맞은 그룹 레드 제플린 역사의 시작이다. 대개의 다른 아티스트들과 달리, 지미 페이지는 그룹 안에 있을 때 온전한 완전체로서의 기량과 호흡을 보여줬다. 사실 기타 테크닉면에선 제프 벡이나 에릭 클랩튼에 비해 조금 저평가되는 지미 페이지지만 'Stairway to heaven'의 기타 솔로를 듣고 있노라면 악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그 만의 소울을 도무지 부정할 수 없다.

썸네일'면도날' 제프 벡이 5위다.
지미 페이지와 비슷한 시기 야드버즈를 거친 제프 벡은 '그룹'의 껍질이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다. 야드버즈 이후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해 역사에 남을 여러 명반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그가 물을 만나 자타공인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솔로로 75년 발표한 걸작 [Blow by Blow]. 이후 그는 여러 음악적 시도들을 접목시켜가며 음악계를 전율시킬만한 명반들을 꾸준히 발표해나간다. 때로 그 시도를 받아들이기 좀체 버거운, 팝 적인 요소를 대거 수용하거나 테크노 리듬을 접목시키는 파격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시도들이 있기에 제프 벡은 여전한 제프 벡이다.

썸네일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조지 벤슨이 검색 순위 6위다.
음악적인 성취도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조지 벤슨의 출발은 의외로 기타가 아닌 보컬이었다. 11살 때 노래를 부르면서 데뷔한 조지 벤슨은 이후 기타를 잡으면서 명성을 쌓아갔고 재즈 기타계의 거장인 웨스 몽고메리로부터 기타 주법을 사사 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덕분인지 1969년 웨스 몽고메리가 타계한 이후에는 그의 유일한 적자로 일컬어지며 위대한 재즈 기타리스트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단 하나의 앨범을 추천해야 한다면 역시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Give me the Night]를 꼽겠다.

썸네일'미래 주의자' 스티브 바이가 7위다.
지미 헨드릭스의 우드스탁 공연과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듣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게 된 스티브 바이는 일찌감치 조 새트리아니와 교류하면서 내공을 길렀다. 그러다 80년 프랭그 자파 그룹에 영입되면서 본격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는데, 84년 잉베이 맘스틴의 후임으로 '알카트라즈'에 들어갔을 때는 잉베이의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존재감을 폭발시키며 반신반의하던 팬들을 떡실신의 사태로까지 몰아갔다. '미래 주의자'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들을 만큼 독자적인 주법과 사운드 메이킹을 하는 데 앞장서는 그의 모습은 "거장은 쉬지 않는다"는 명제를 곱씹게 만든다.

썸네일8위는 닐 자자다.
잉베이 맘스틴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현란한 기교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라며 탄탄한 실력과 차별적인 비브라토 주법으로 "전 생각이 다릅니다"표 음악을 선보였던 기타 천재 닐 자자가 검색 순위 8위다. 물론 닐 자자의 사운드 또한 호쾌한 면이 분명 존재하고 질주하는 듯한 타격감이 일품이지만 속주로 유명한 대가들의 그것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서정적인 감수성과과 펑키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맥락의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천재 기타리스트라 부를만하다.


썸네일9위는 에릭 존슨이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음색의 사운드부터 멀끔한 외모에 이르기까지, 참 바른 생활 사나이일 것만 같은 에릭 존슨이 검색 순위 9위를 차지했다. 흥겹고 풍요로우면서도 맑은 사운드를 자랑하는 그는, 데뷔 초반 좀체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80년대 들어 발표한 [Tones]를 기점으로 최고의 찬사와 사랑을 받는 기타리스트가 됐다(이 앨범은 <기타 플레이어>지에 의해 그 해 최고의 신인과 최우수 앨범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7년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와 함께한 'G3 Concert'는 그 자리에 선 천재들의 이름값만큼이나 원숙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주어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썸네일10위는 비비 킹이다.
블루스의 제왕 비비킹의 이름이 언제 나오나 싶었다. 10위에 랭크됐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흑인 교회에서 가스펠 음악에 열중하며 자란 비비킹은 컨트리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던 사촌과 교류하면서 기타 주법을 전수받게 됐다. 49년 불릿 레코드사에서 첫 싱글 4곡을 녹음한 이래 단 한 번도 블루스의 제왕 자리를 남에게 넘겨준 일이 없는 그는,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백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유색 인종으로써 인권 신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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